============================차 례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
청포도 노래/ 호미자루/ 아라 뱃길에서/ 달팽이 詩/ 가을 달빛/ 허수아비/ 소금 꽃밭/ 눈꽃사랑/ 종이컵/ 제주를 가다/
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
청포도 노래
담록빛 꽃잎으로 책장을 넘기렵니다
칠흑고요 울타리에 말씀처럼 맺혀있는
풋풋한 대지의 과즙
한 여름 밤 식혀주고
송이마다 차오르는 울음 같은 기쁨 같은
수줍은 둥근 것이 자꾸만 부풀어져
보송한 그 은빛솜털도
눈 맞추며 나누렵니다
서늘한 달빛 다가올 때 여린 살들 숨소리
산호리 넝쿨마다 내 사랑 詩 올 듯하여
알알이 톡 터트려도
연두색깔 그리움 일뿐
호미자루
긴 봄날 물음표 같네 둔덕 위 호미자루
자기 둘레 넓혀놓은 조그마한 쪽 파 알들
내 이랑 옮겨도 될까?
실 바람 살랑살랑
맵싸한 파밭 건너 아른히 들려오는
파뿌리 될 때 꺼정 오손 도손 살어라 잉!
울 엄니 장다리꽃 같은
노란 봄날 그 물음
아라 뱃길에서
세월 같은 모래알 도시로 흘러가고
길 잃은 민들레 홀씨 바람 에게 길을 묻네
큰 바퀴 누빔 소리에
떨고 있던 굴포* 川천
풀잎 적신 돌 틈에서 살근거리던 은빛 비늘
쓸려간 다슬기 집, 부레옥잠도 떠나갈 때
갈잎에 숨겨진 사랑
찾아온 댕기물떼새
산자락 품에 안고 숨 고르는 파랑을 보네
아른아른 보랏빛, 그 그림자 가슴에 묻고
묵언의 하얀 포물선,
길이 되는 江이여!
* 굴포 : 인천 계양구 아라 뱃길이 놓여진 지명
달팽이 詩
어두움을 그슬려놓은 줄무늬 작은
달빛 스민 뜰에 앉아 허밍으로 노래하다
내 집이 꽃밭인줄 알고
한동안 부끄럽네
접시꽃에 웅크린 별, 맞추다 스러진
그리움을 둥글게 여민 그 껍데기 등에 지고
이슬 길 맨살로 미는
저 여린 오체투지
느릿느릿한 몸을 뒤척이며 더 아파했지
가난한 침상 같은 그늘 속 반 지하 집
꽃처럼 피어나고 싶어
그려보는 隱花은화의 벽
가을 달빛
밤 하늘 가을 달빛 동그라미 그림자
길섶에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그림자
가만히 만지고 싶은 그 볼우물 그림자
밤하늘 은은하게 이슬 머금은 바람소리
들녘에서 볏잎들 기웃거리는 바람소리
뒤란을 스치고 싶은 갈무리 바람소리
비늘구름 항아리 속에 그 무엇을 숨겼을까
저 멀리 서 들려오는 은빛은빛 숨소리
사방을 적시는 물빛소리, 어머니 흰 가슴처럼
허수아비
애기똥풀 다물다물 이슬 안고 반짝인다
논두렁에 발을 묻고 두 팔 벌린 아버지
먼 하늘 들녁 끝 자락 가슴으로 안고 있다
한 알 한 알 맺혀가는 풋풋한 볏 잎에서
허재비는 종을 친다 참새들 기웃거릴 때
한 생이 여위어가는 햇살 한 줌 이운 자리
실 잠자리 원을 그려 저녁 놀 내려다보듯
고개 숙여 이삭 줍던 이랑마다 고인 아픔
황금 빛 바람의 살들이 그 흉내를 내고 있다
속삭이는 물결처럼 저 알갱이 파문일어
하얀 밤 시린 앞섶 여미지도 못한 채
새벽 별 잠들지 못하고 볕 뉘를 세운다
소금 꽃밭
석류 빛 노을 자락, 아득한 휘장 사이로
검은 흙이 말을 건다 풍랑은 지나갔는지
어느새 이루어진 신방, 누추한 꽃밭이다
외 발 수레 끌어 오는 칼 바람의 맨 살들
물갈퀴 새 발자국에 수만 금 갈라져도
먼 훗날 짠 향내 뛰우는 낮지만 눈부신 고요
아들을 가슴에 묻은 그 어머니 속 울음도
하얀 햇살 거품 같은 내 마음 몸부림까지
잔잔히 가라앉히는 설원의 침묵일까
뒤척이는 물결소리, 소라껍질에 저어 담아
진주 알 같은 빗방울로 여울 따라 흘러 흘러
오늘은 찬란한 별 꽃, 장터에서 꽃피우리
눈꽃사랑
누군가를 기다리며 겨울밤이 비어있다
촘촘히 적신 눈가에 천千의 별들 숨을 때
하늘 땅 이어주려는 꽃 잔치인줄 알았다
찬 숨소리 구름 속 그애 모습 띄어놓고
살며시 만지고파 저 멀리서 손사랫짓
얇은 사絲 휘장 사이로 첫사랑 눈꽃은 피어
달빛 따라 사알짝 여린 싹들 숨 고를 때
은빛은빛 등燈을 다는 내 영혼의 시린 마음
산山마을 청 보리 돋는가 풋풋한 저 살내음이여
종이컵
항상 기다리는 몸짓, 둥글게 비어놓고
차곡차곡 숨소리 귓전에서 들리는 곳
뜨겁게 솓아지 사랑
고스란히 붙들고 있다
모카* 땅 초원에서 카카오 향기 담아
마지막 날이 예고된 마야의 입술 적시었지
천정도 보이지 않은
얇디 얇은 저 유지의 집
하얀 나비 날갯짓 홑벚꽃 하늘하늘
떠난 향기 껴안은 채 재활용코너 몸 누이면
풀 숙인 조그마한 둘레
바람도 귀를 접겠지
*모카 : 산티아고의 커피주산지 인디안 이름유래
제주를 가다
1, 다랑쉬 오름
한 겨울 얼음새꽃 고물고물 속 눈 트고
다랑쉬 무덤가에 얼멍한 울타리들
에굽은 바람의 살들 품었다가 내보낸다
타고남은 현무암 여미듯 깔아놓고서
소원을 움켜 주고 몰래 걷는 성황당 길
눈시울 젓어가는 밤
달 무름이 붉어진다
2. 바람의 무늬
검은 파도,
바람 속에는 흰 등뼈가 보인다
백경의 등가죽 같은 오름의 곡선 같은
팽팽히 튕겨지는 것,
물보라 속 나선무늬
멀쑥 큰 파초가 파도에게 타이르듯
그러지마, 화내지마 메아리 같은 그대여
애월涯月리 저 바람새들
그 바다를 혼자 돈다